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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하이파 [Haifa, 헤파] 시 야경

태초 여행사 2010. 8. 23. 00:26

 

 

하이파 [Haifa, 헤파]

 

이스라엘의 주요항구로서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하이파 만을 따라 있다. 〈탈무드〉에서 처음 그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자이자 성서지형학자인 유세비우스가 시카미노스라고 불렀던 이곳은 1100년의 십자군 원정 후에는 카이파스라고 불렸다. 그후 1799년에는 나폴레옹에게, 1839년에는 이집트의 장군이자 부왕(副王)인 이브라힘 파샤에게 점령되었다가 1840년 영국이 이끄는 유럽 열강 함대들의 압력으로 터키에 넘어갔다. 1918년 영국군에 점령되었고, 곧이어 1922년에는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일부가 되었다.

 
산업시설들이 있는 하이파는 1948~49년 팔레스타인 전쟁 동안 전쟁 참여세력들의 큰 관심거리였다. 아랍인들과 유대 방위군 하가나가 이곳을 놓고 싸운 끝에 1948년 4월 22일 아랍인들이 항복하면서 유대인의 수중에 들어왔다. 전쟁 전에는 5만 명에 이르렀던 아랍 거주민들의 수가 전쟁 직후 3,000명으로 줄어들었으나 이곳은 여전히 이슬람교도와 주로 마론파교도인 아랍 그리스도교도, 바하이교도가 섞여 살고 있는 세계적인 도시로 유명하다. 하이파 시는 항구가 있는 만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카르멜 산의 북쪽 경사면에 있다. 주거지역과 산업지구가 경사면에 걸쳐 있으며, 고급주택들과 많은 호텔들이 만 전체의 멋진 경관이 한눈에 보이는 산 꼭대기에 세워져 있다. 저지대와 고지대로 나누어진 시가지들은 지하철을 통해 이어진다.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는 가운데 개발된 심해항구는 1933년에 개항된 후 이스라엘이 독립국으로 선포되면서 크게 확장되었다.
 
주요산업으로는 강철제품 주조, 식품가공, 조선업(작은 해군 함정이나 어선) 및 화학제품·직물·시멘트 제조 등이 있으며, 1939년에 설립된 정유소들도 있다. 이스라엘에서 증기로 가동되는 발전소(1934)가 최초로 건설된 곳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 하나밖에 없는 지하철 카르멜리트가 1959년에 개통되었다. 교육시설로는 카르멜 산 비탈에 건설된 이스라엘공과대학의 새 캠퍼스들(테크니온, 1912 설립, 1924 개교)과 하이파대학교(1964)가 있다. 1954년에 세워진 큰 해양박물관을 비롯해 많은 공원들이 눈에 띄며, 그 가운데 바하이교 창시자의 아들인 아브드 알 바하의 무덤이 있는 페르시아 공원이 있다. 이곳은 바하이교의 세계 본부이기도 하다. 인구 269,300(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