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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켓의 역사/푸켓의 유래

태초 여행사 2010. 11. 25. 11:38

켓의 역사/푸켓의 유래

 

 

 

정크실론(짱 씰런)에서 푸켓(푸껫)으로

                              (from Junk Ceylon to Phuket)

 

글쓴이: 싸란야 쑥싸왓(By Saranya Suksawat)

출전: Thaiway Magazine.com 159 P

 

최근에는, 태국의 동남부쪽  파타야 보다도 서부남부 지역인 푸켓이 관광목적지로 그 선호도가 올라가 있다.

허니무너, 가족여행객들로 부터 호평을 받는 푸켓에 대한 유래를 소개합니다.   

 

 

고대 그리이스의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미(Cladius Ptolemy)가 쓴 지리학 서적에 의하면  1,800년 전, 로마의 배가 말레이반도를 향하여 항해를 떠나 역사상 처음으로 정씰론(푸켓파통의 쇼핑몰이름이기도 합니다.)이라는 불리는 말레이반도 근처의 또 다른 반도를 항해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오늘날의 지도를 보면서 이 배가 지나간 말레이반도 근처의 또 다른 반도라는 곳이 어디인지 판단해 보자.

말레이반도 전체의 해안선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 곳을 제외하고는 어디에도 반도라고 일컬어 질 만큼 해안선이 돌출된 곳이 없다.

 

현재의 푸켓지역에 해당하는 팡아(Phang-nga)지역과 연결된 남부지역인 크라비(Krabi)지방의 이쓰무스(Isthmus)라는 곳의 해안선이 돌출되어 반도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대시대에는 팡아와 이 지역 땅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이 책에서 항해하면서 정씰론이라고 기술하고 있는 지역은 현재 푸켓의 팡아만에서 이쓰무스까지의 이 지역으로 판단된다.

 

만일 이러한 가정이 맞는 것이라면, 프톨레미가 기술한 책의 내용이 현재의 푸켓에 대한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정씰론이라고 기록된 이유는 말레이어로 이 지역을 우장 씰랑(Ujang Silang)라고 불리워 진 것이

와전되어 기록된 것으로 가정해 볼 수 있다. (씰랑-씰론)

 

말레이어로 우장(Ujang)이란 말은 반도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씰랑(Silang)이란 말은 아주 오래 전 이 지역에 살았던

주민인 폴리네시안(Polynesians) 부족의 언어라고 여겨진다.

 

스리비자야 왕국(7C세기~12C세기)시대에는 오늘날의 푸켓(Pheket)은 탈랑(Thalang)이라고 불리워졌다.

탈랑(Thalang)이라는 말의 어원은 말레이어의 씰랑(Silang)이라는 학설이 있다. 씰랑(Silang)이 처음에는 쌀랑(Salang)으로 변했고, 다음에는 찰랑(Chalang)으로 그리고나서 딸(Thalang)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다.

 

딸랑(Thalang) 지역은 그 당시 섬의 북부에서 중심부까지를 커버하던 지역이었다.  (딸랑은 수코타이 랑캄행 대왕 통치기간(1283~1317)동안에 태국의 소유가 되었다.)

 

딸랑은 섬에서 대규모의 주석광산이 발견되었던 17세기부터 중요한 지역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딸랑은 버어마로부터 두 번의 침략을 받았다. 한 번은 1785년 그리고 또 한번은 1809년 이었다. 그러나 딸랑과 이웃지역은 함께 힘을 모았고  버어마가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틈을 타 영토를 회복하였다. (당시,  이곳의 성주가 사망하자 그의 부인인 과 그녀의 동생 은 푸켓을 지키기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이는 1787년 아유타야에 있었던 프랑스인 사이먼이 후일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출간한 책에 기록되어 있었고, 또 다른 영국의 역사학자인 아서 페인경에 따르면 찬과 묵은 마치 남자처럼 보였고, 푸켓을 지키려 두 개의 망루를 세우고 적에게 얼굴을 감추었으며, 약 한달 후에 미얀마군이 본국으로 철수할 때까지 푸켓을 지켜내었고,그들의 업적을 기려 현왕조의 시작인 라마 1세가 그들에게 귀족의 칭호를 수여했다합니다. 공항에서 푸켓타운으로 오는 길목에 영웅자매 동상 이세워져 있습니다. 이에대한 자세한 스토리는 푸켓박물관에도 있습니다.)

 

 

이후에주석광산의 지속적인 개발이 이루어져 섬 전체는 날로 번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외국과의 교역도 활발해져 갔다. 처음에는 섬의 서부와 남부지역을 지칭하던 푸켓(Phuket)이란 말 보다도 섬의 북부와 중부를 지칭하던 딸랑(Thalang)이란 말 섬 전체를 대표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푸켓중부 라구나단지 지역등에는 딸랑이라는 지역명이 많은 것입니다.)

 

서부와 남부의 해안지대로 외국의 상인들이 많이 드나들면서 원주민과 교역이 활발하게 되면서 점차적으로

섬의 북부와 중부를 커버하던 탈랑이라는 이름 대신 섬의 서부와 남부를 커버하던 푸켓이라는 이름이

이 섬을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쓰여지게 되었다. (라마 4세 통치시대(1851~1868)에 이르러 서부와 남부를 지칭하던 푸켓의 지위가 격상되어 북부와 중부를 지칭하던 랑을 공식적으로 아우르게 되었다.)

 

(실제 과거에 푸켓성이 존재했던 공항과 찬과 묵의 영웅동상  사이에 옛 명성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여전히 딸랑이 하나의 읍을 형성하고 있고, 라마 5세 통치기간(1851~1868)동안 섬의 이름이 부켓(Bhuket)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푸켓(Phuket)이라는 말의 어원은 말레이어의 부킷(Bukit)이라는 말이라는데는 일반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부킷이라는 말은 말레이어로 이라는 의미이다. 이 지역의 형상이 바다에서 불쑥 솟아오른 산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푸켓(Phuket)은 관리이자 장성군인이었던  프라야 랏싸다(Phraya Ratsada-푸켓타운 라사다항구라는 이름은 이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1901년에서 1913년 동안에  이 지역을 관장하던 시기에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903년 새로운 산업인 고무나무 가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푸켓은 번영을 더해갑니다. 그후 1933년 푸켓을 독립된 주정부로 인정했으며, 1960년대말 70년대초 푸켓을 찾는 외국관광객이 증가하자

태국 정부에 의해 하와이 니스와 함께 세계 3대 관광 휴양지로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 되었습니다.)

 

푸켓(Phuket)은 처음에는 부켓(Bhuket)으로 쓰여졌다. 그러다가 1967년에 `P` 라는 글자가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영어식 표기가 이러하다는 것이고 태국어로는 `푸껫`이 정확한 발음이다.  

 

오늘날의 푸켓은 태국에서 가장 선호되는 관광의 중심지이며 전세계에도 널리 잘 알려진 곳이다.  

 

 

 

*이 글은 타이라인 번역을 일부 수정해서 올린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