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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분쟁의 원인

태초 여행사 2011. 2. 8. 15:32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분쟁의 원인

 

 

 

 

캄보디아 북쪽 프레아 비헤아르 지역과 타이 동쪽 시사케트 지역 사이의 국경 일대에 위치해 있는 크메르 제국의 사원이다. 힌두교시바신을 위해 축조되었다. 525 미터 높이의 당그레크 산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지리적 위치와 특수성 때문에 소유권을 두고 캄보디아와 타이 사이에서 지속적인 분쟁이 일어났다. 1962년에는 마침내 국제사법재판소캄보디의 소유권을 인정하였다.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은 6세기에 걸친 크메르 제국의 기간 동안 지어진 사원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경관을 갖추고 있다. 제국의 정신적(종교적) 사고체계가 여실히 반영되어 있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은 특이하게도 기존의 사원들처럼 동향으로 지어지지 않고, 북쪽을 향하여 건설되었다. 사원의 이름은 캄보디아의 프레아 비헤아르 지역의 명칭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8년 7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일대는 힌두교시바신에게 바쳐지기 위하여 9세기 초부터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원은 10세기 초의 코 케르 치세시에 건설된 것이다. 현재, 10세기 후반의 반테스 레이 양식도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원들은 크메르 제국의 수르야바르만 1세(재위 1002년 ~ 1050년)와 수르야바르만 2세(재위 1113년 ~ 1150년)의 통치 기간에 건설되었다. 사원에서 발견된 비문에는 수르야바르만 2세가 신성한 종교 의식과 축하 연회 등을 배우는 모습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원래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일대는 힌두교 사원이었지만, 힌두교가 쇠퇴하자 불교 사원으로 바뀌었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프레아 비헤아르 힌두교 사원의 영유권을 두고 수십년간 이어져온 태국과 캄보디아 간 분쟁이

최근 들어 다시 무력 충돌로 비화하고 있다.

영유권 분쟁 대상은 11세기에 세워진 힌두교 사원 프레아 비헤르(Preah Vihear)으로 태국과 캄보디아군은 이 지역에서 지난 4일 처음 충돌했다.

이후 두 차례 추가 교전이 이어졌고,이 과정에서 캄보디아 군인 두 명이 사망하는 등 민간인을 포함해 3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최근 교전에서는 프레아 비헤르 사원의 일부가 파괴되기도 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양국 정부는 접경 지역 마을 주민 수천명에게 대피령을 내린 상태다.

양국은 충돌의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고 있다. 태국은 캄보디아가 태국 마을을 먼저 포격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캄보디아는 태국군의 선제 공격이

사건의 발단이라고 몰아붙인다.

양국 간 신뢰가 무너진 것도 사태를 악화시킨 요인이다. 태국과 캄보디아 군 지역사령관들은 첫 교전이 발생한 뒤 90분간 만나 병력 증강 금지,포로 본국 소환,즉각적인 교전 중단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합의가 이뤄진 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또다시 군사 충돌이 일어났다. 추가 협상이 이뤄지기 힘든 상황이다.

훈 센 캄보디아 총리가 6일 국영TV를 통해 '태국에 의한 침략'이 중단될 수 있도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회의를 소집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양국 간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지대에 있는 프레아 비히어 사원은 줄곧 양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뇌관이었다. 캄보디아의 선조인 크메르 왕국이 세운 사원이긴 하지만 지리적으로는 태국과 오히려 가까운 측면이 있다. 산꼭대기에 세워진 프레아 비헤르 사원에서 내려다보면 태국 쪽은 경사가 완만한 반면 캄보디아 쪽은 절벽에 가깝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관광객이 태국을 통해 사원을 방문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인터넷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