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라는 표현이 있다.
위 표현은 4.19 혁명을 소재로 한 시인 김수영의 시제(詩題)이다.
이 표현과 일치하게 4.19때 수많은 시민과 학생이 피를 흘렸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4.19와 5.18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소중한 피를 흘렸다. 그 피를 먹고 한국 민주주의는 자랐다. 그들의 피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민주화된 한국을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는 내란을 방불케 하는 총격전이 발생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질서를 잡으려는 정부보안군과 폭력을 즐겨하는 폭력시위대와의 대립으로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오랫동안 태국의 부를 거머쥔 소수의 기득권층과 태국 경제정책에서 소외되어온 다수를 이루는 농민과 도시의 빈민층간의 대립이다.
좀 더 부연하자면 오랫동안 태국을 좌지우지한 왕과 왕족들, 군부와 경찰, 농촌출신 도시빈민들의 저임금으로 부를 쌓아온 방콕중산층으로 이루어진 기득권층과 태국의 경제개발에서 소외되어온 북부지방과 북동부지역의 농촌 사람들, 그리고, 도시의 빈민층간의 대립이다. 이것은 일종의 계급갈등이다.
양쪽의 말을 들어보면 현 정부 측의 주장보다는 레드셔츠 쪽의 주장이 옳다.
이유는 무엇인가?
탱크를 앞세운 군부 쿠데타세력이 합법적인 선거로 뽑힌 탁신수상을 부패한 정치인으로 그리고 국왕에 불경한 정치인으로 단죄하고 몰아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탁신의 부패를 단죄하기위한 쿠데타이지만 태국 정국의 속을 분석하면 기득권층이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우리들 밥그릇을 다 없애는 것 아닌가?"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실, 태국사회에서 부패의 원조는 군부세력이다.
태국의 군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각종이권에 간여하고 있다. 돈 되는 사업에는 대부분 고위 장성이나 은퇴한 장성들이 발을 들여 놓았다. 심지어는 태국의 섹스산업이나 도박장, 마약등의 밀거래의 연결고리를 추적하면 상당부분 고위직의 군인들이나 은퇴한 장성이 손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1932년 군부세력의 쿠데타로 태국의 정치제도가 절대군주체제하에서 입헌군주제로 바뀌면서 태국에 민주주의가 정착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왕에 의한 통치가 군부세력에 의한 통치로 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탁신 전 수상을 몰아낸 군부쿠데타까지 포함하면 총 19번의 쿠데타로 태국의 정치를 마음껏 주무른 세력이 바로 군부세력이다. 태국 내에서는 군부세력을 견제할만한 세력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1932년 왕을 주저앉힌 쿠데타 이래로 80년 가까이 이토록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왔기에 가장 썩은 집단이 바로 그들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은 그동안 쿠데타를 일으켜서 군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을 시도하기도 하고, 또는 군복을 벗고 정치권으로 쉽게 이동해서 태국의 정치를 마음껏 주물렀다.
군부만큼 부패한 세력이 없는데, 이러한 군부가 선거로 뽑힌 탁신수상을 부패한 정치인으로 지목하고 쿠데타로 몰아내니 기득권층 외에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그에 더하여, 태국의 기득권층인 왕, 왕족, 군부, 경찰세력, 방콕의 중산층을 대표로하는 기득권층은 정권을 쥐고, 그들의 부를 쌓기에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어왔다. 상속세도 없어 부의 대물림은 당연시되었고, 부동산관련세제가 거의 없다 시피하면서 부동산재벌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최저임금제도등도 없어 빈부격차는 해가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인 것이 사실이다. 결국, 태국은 "세계최고의 빈부격차를 가진 나라"라는 명칭도 얻게 되었다. 태국의 기득권층은 계층 간의 불협화음이나 격차를 없애거나 줄이려는 노력을 거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빈부격차를 더 벌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심지어는 스스로를 상류층을 의미하는 "하이소"(하이소사이어티의 줄임말)로 불리 우기를 즐겨했고, 심지어는 신문, 방송등에서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하이소"로 떠벌리는 건방을 떨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 탁신수상이 나타난 것이다.
"포퓰리즘" 정책을 펼친다는, '포퓰리스트'라는 비난을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으로부터 받으면서도 재임기간에 "병들면 죽는 날만을 기다려야만 했던 빈민층"에게 30밧만 내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의료비 절감, 생계지원금 제공 등 많은 친 저소득층, 친서민 정책을 쏟아낸 탁신은 그들에게는 오랜 가뭄속의 단비 같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더하여 태국 기득권층의 이권과 관련이 있는 섹스산업 주요지역을 강력한 개혁드라이브정책으로 초토화시켰기에 기득권층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태국의 국민들 다수에게는 인상 깊은 이미지를 남기기도 했다.
태국의 과거 정치인들 역시 대부분 썩었고, 그들은 오랫동안 그들의 이익을 위해, 그들의 부를 위해 서민들을, 빈민들을 짓밟았지만, 탁신이 비록 천문학적인 탈세를 한 부패한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탁신은 그들을 가슴으로 껴안았기에, 태국민의 다수를 이루는 태국의 빈민층, 서민층은 "제발 돌아와 주세요. 탁신!"을 외치는 것이다.
현재, 방콕시위대는 잘 훈련된 정부보안군에게 밀리는 상황이다. 모든 것이 정부군에게 열세이다. 현재의 추세라면 곧 진압될 것이다. 그러나, 시위대를 진압하면 모든 상황이 종료될 것인가?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지 않았는가?
현재, TV에서 보이는 방콕의 상황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연상케 한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없었다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없었다면, 수많은 대학생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1987년 6월 항쟁의 승리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존재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2010년 3월부터 시작한 레드셔츠의 방콕시위는 분명, 오래지 않아 태국민 대다수가 참여하는 태국시민혁명을 이끌어 낼 것이다. 한국의 1987년 6월 항쟁이 군부정치와 야만적 고문정권 종식을 가져온 것처럼 2010년 방콕시위가 이끌어 낼 앞으로 있을 태국의 거대한 시민혁명도 근 80년 가까이 태국정치를 유린해온 태국의 군부세력을 몰아내고, 진정한 의미의 민주정치를 놓는 토대를 제공할 것임이 분명하다.
역설적이게도 방콕시위로 더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갈수록, 태국의 민주화는 더 앞당겨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레드셔츠의 정치적 배경이 되는 사람들은 그들 형제의 죽음에 피눈물을 흘리며,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더욱더 열망해서 그들의 결속력을 더욱더 강회시킬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태국 정부의 시위대 진압이 강경할수록, 태국 현 정권과 기득권층의 몰락의 시기가 더욱더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분명,2010년의 방콕시위는 태국민 모두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한국민주주의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듯이...
방콕시위로 쓰러져간 망자(亡者)들의 한(恨)이 태국민주주의정착으로 승화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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