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비상사태- 태국시위의 전개과정, 그리고 결말은 무엇일까? -12월 8일
태국시위의 전개과정및 배경
태국시위는 12월 5일 국왕생일을 계기로 소강상태에 있다. 국왕생일이 있기전 태국언론매체,외신들은 국왕생일에 있을 국왕연설에
주목을 했다. 태국정치가 위기의 순간에 있을 때 왕은 해결사로서 나선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12월 5일 국왕연설에서 푸미폰왕은
"정국의 안정과 화합"을 강조했다. 왕의 메시지는 외관상으로는 일단, 수텝이 이끄는 엘로우셔츠세력보다는 잉락정부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번 태국시위는 8월 잉락정부가 국민 대화합을 위한 사면법이 발단이 되었다. 국민대통합이라는 명분을 걸어 여당, 야당 인사들,
시민운동가들의 죄를 사면하는 내용으로 사면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처음 사면법안의 원안이 하원에 상정되었을 때, 잉락정부는
이 법안이 탁신전 총리 사면을 포함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10월 원안 심의 과정에서 급작스럽게 수정안이 만들어져 탁신도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잉락정부의
사면법안이 결국, 탁신 전총리의 귀환을 위한 수순이었음을 증명한 꼴이 되었다.
탁신을 포함한 사면법에 대해 반정부 연합세력은
국민참여를 호소하면서 정부 불복종 운동을 시작했으며, 야당인 민주당 국회의원
9명은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이들은 머리를 삭발함으로 결사항전의 의지를 과시했다. 그에 더하여 그들은 명분을 얻기위해
국왕에게 " 국가의 행정을 담당할 국민회의(people's council) 허가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는 사면법안을 계기로,
그동안 정부 실정과 부정부패, 다수당이 저지른 의회 독재로 여론을 환기시키겠다는 것으로, 잉락 정권을 타도 의도를 명백히
한 것이다.
국민의 총선이 아닌 군부 쿠데타가 넘겨준 과도정권의 수장인 전 아피싯정권이 탁신전총리가 재임시절 서민층과 농민들을 위해
추진한 속칭 "포퓰리즘 "정책들 다수를 사문화시키거나, 연기시키는 과정에서 방콕과 방콕외곽에 거주하는 빈민,서민, 노동자들은
극심한 반감을 가졌다. 인구 밀집도가 높은 북부와 북동부 지방의 농민들 역시 가난한 농민들을 위한 탁신의 정책들이 하나하나
사라지면서 그들의 삶이 탁신총리시절에 비해 피폐해졌다. 결국, 2011년 총선에서 국민들 다수는 아피싯정권이 아닌 탁신의
대리인이라 불리우는 잉락을 선택했다. 탁신의 귀환을 염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잉락정부의 탁신사면을 포함한 사면법은
사실상, 국민다수가 염원하는 법안의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면법안 추진과정에서 잉락총리의 말바꾸기는
야당과 기득권층의 분노를 샀다.
잉락이 정권을 잡으면서 태국정부의 정책기조는 당연히 탁신이 재임시절 추진한 정책들을 다시 살리는 것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정치와 행정이력이 전무한 잉락이 총리로 나서게 된 배경에는 탁신의 지명이 있었지만, 이는 사실상, 국민다수를 이루는 빈민층,
서민층, 노동자층, 농민층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부자당인 민주당과 기득권층은 그들이 비난하는 "포퓰리즘 정책"들인
잉락정부의 각종 정책들에 대해 항상 빈대를 했다. 대표적인 것이 쌀 구매보조금제도이다. 정부 재정을 약화시키는 수십억 바트에
달하는 쌀 구매를 위한 보조금 제도를 중지할 것을 IMF가 요구한적도 있을 정도로 쌀 구매 보조금제도는 의회의 주요이슈중 하나이다.
11월 12일 발표된 태국 경제 리뷰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농민들의 지지율 확보를 위한 쌀구매제도는 2011년 시작 이후로 44억
달러(4조6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낳았다고 발표했다. 잉락정부의 서민들을 위한 정책들이 결국, 정부재정의 고갈로 연결되었고,
이는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 상황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기에 민주당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에게 잉락과 탁신은
"눈엣 가시"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현 시위의 발단과 과정, 배경을 보면 잉락총리가 사면법안에 탁신을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포함시킴으로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사실상 현 시위는 잉락총리 배후 인물인 탁신에 대한 현 기득권층의 분노와 두려움이 표현된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빈부격차가 날이 갈수록 커지는 현상황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푸어타이당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낸 것,
즉, 기득권층의 좌절감이 시위로 연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주된 근거중 하나는 현 엘로우셔츠 세력이" 왕이
총리를 선출해야 하며, 총리는 국민의 대표를 선출에서 국민회의를 구성해서 정치해야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들 기득권층은
"현 국민은 무지해서 선거를 통한 정치는 무의미하므로 신과 같은 국왕에 의해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아제, 시위는 정점을 찍을 때가 되었다. 6일 시위대를 이끄는 수텝은 " 현 정권을 무너뜨리기위해 수백만 명이 거리에 나와야 한다,
이만한 수가 시위에 나오지 않는다면 내 발로 감옥에 들어가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현 시위대의 규모로 보건대 , 수 백만명의 참여는
불가능한 일이다. 방콕 시민의 다수는 서민층이고, 그들 다수는 북동부 이산지방출신이다. 이들이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현 엘로우셔츠 시위에 나설 수는 없다. 단지 300~500밧정도의 일당이 필요한 서민들만 사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나라 안밖의
경제사정은 좋지 않고, 태국바트화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며, 관광객들의 수가 급감해 국민들 다수는 정치와 경제애 대한
불안감에 휩쌓여있고, 시위에 대해서는 피로감을 나타내고 있다.잉락정부는 12월 7일(토요일) "조기총선에 동의하면 의회해산과
사퇴용의"가 있다고 시위대에 화해를 시도했다. 그러나 수텝이 이끄는 시위대는 "총리사임과 정부해산"만을 고집하고 있다.
현 시위대를 이끄는 수텝은 12월 9일 9일 시위자가 100만명에 도달하면 승리를 선언하고 "국민회의'(People's Council)를 설립해 시민들을
위한 정부를 꾸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패배를 인정하고 수배에 응해 법의 심판을 받겠다" 고 말했다. 그의 주장으로 승리는 함께 싸우는
동료들의 수로 측정된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그의 연설에서 나온 "숫자 9 "이다. 수텝은 " 왕과 종교를 보호하고 싶은 사람은 9일 월요일
오전 9시 39분에 밖으로 나와 함께 하자"고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했다. 수텝의 연설에서 반복되는 숫자 9는 태국인들에게 행운의 숫자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숫자9의 발음이 '까오"로, 이는 태국어 발전하다, 나아가다의 뜻을 가진 "까오나"와 관련이 있다. 즉, 한국의
"행운을 의미하는 숫자 7"과 같은 의미이며, 태국의 주요관공서나 기업들의 연례행사등을 보면 숫자 9가 들어간 시간을 주로사용한다.
예를 들면 오전 10시가 아닌 오전9시 59분 또는 오전 9시59분 59초로 행사를 시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시위의 결말
현 시위의 향방은 12월 9일, 월요일이 될 것으로 보고있다, 수텝이 주장한 수백만 즉, 100만이상의 시민이 참여하면 현 시위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100만이 안되더라도 지금까지의 시위대 규모를 훨씬 능가한다면 시위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예상밖의 낮은 참여율을 본다면 현 시위는 지지부진하다가 끝나고, 수텝을 포함 시위대를 이끈 주동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한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현시위대의 다수가 돈받고 참석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수를
늘리기위해 기득권층에서 엄청난 자금을 뿌려 시위대의 "세(㔟)"를 과시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현 시위대가 여론을 얻기위해 태국정치에서 중요한 세력인 왕,군부, 심지어 종교를 끌어들이려 했지만, 어느 세력도 동조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태국 안밖의 경제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국민들 다수는 "나라경제상황이 좋지 않은데 무슨시위냐?"고 말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잉락은 정부의 행정을 마비시키시위해 하나하나 청사를 점거한 현 시위대애 "필요하다면 조기총선을 실시하고,
총리사퇴하겠다"고 제안함으로 폭력젹인 현 시위대와 상반된 평화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명분,정당성, 이미지 모두에서 이기는
싸움을 한 잉락정부의 의도대로 정국이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내외신 언론들도 시위가 이변이 없는 한 지지부진하다 조용히 사그러들
전망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태국정치가 각 세력들(왕,군부, 종교, 화교, 재벌들. 서민층, 농민층)의 난해한 이해관계로 얽혀있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고 단정짓기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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