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생활속의 발견

명품 변호사 "조용주변호사"를 아시는지요?

태초 여행사 2016. 2. 15. 16:09

 

 

 

 

 

 

                                                       명품 변호사 "조용주변호사"를 아시는지요?




위의 사진을 본 사람들중 일부는 말할 것이다. " 어라, 어디서 봤는데...어디더라? " 할 것이다. 맞다. MBN 방송의 "법대법"에 패널로 나온 변호사이다. 준수한 외모, 차분한 논리,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는 일품이다. 서울대법대졸, 대전,인천,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출신으로 중앙대 로스쿨 겸임교수, 인천대법대겸임교수이기도 하다.


태초가 조용주 변호사를 만나게 된 계기는 태초가 경영하는 학원이 속한 목동의 모 건물때문이었다. 태초는 이 건물 4층 300평중 반이상을 소유하고있었는데, 입주초기부터 불투명한 관리비는 물론, 건물관리 직원들이 준깡패나 다를 바 없었다.  이 건물을 지어 분양한 건물주는 건설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으로 튼튼한 뒷배경과 막강한 자금력으로 구분소유자들을 함부러 대했다.  건물주는 1993년에 지은후 분양권을 사들인 구분소유자들과 소송을 밥먹듯이 한 사람이었다. 이상하게 숱한 싸움에서 구분소유자들이 이 건물주 1인을 당해내지 못했다. 건물주도 사실상 아니었다. 1993년 이후로 분양을 시작해 2004년해도 건물지분 약 26% 정도만 소유한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3층병원가의 수많은 병원장들도 여러번 소송을 했지만 번번히 패소했다. 수차례 소송에서 연이어 패소하자 건물내 구분소유자들은 거의 항복선언을 했다. 그 결과 건물관리소장과 직원들은 준깡패로 돌변해 거침없이 행동했다. 건물내 점포나 사무실에 노크한번 하지않고 들어가는 것은 예사였다. 복도에 무엇인가 내놓은 것이 있으면 발로 차버리거나 부수기 일수였다. 마음에 안들면 전기를 끊어버리고 단수조치를 취하는 것도 불사했다. 항의하면  거친욕은 기본이고 무력도 불사했다.


태초는 입주한 후 건물관리소장의 반말과 거친 욕을 듣고 몇번 항의를 했고, 결국 해결이 안되자 2004년부터 건물내 모든 구분소유자와  임점한 점포임차인들을 찾아 다니면서 건물주의 불법적인 행태들, 건물관리인들의 폭언, 폭력등을 조사하고 증거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일부 구분소유자들은 조폭이나 다를 바가 없는 건물주를 두려워했다. 결국, 건물관리사무소는 태초의 움직임을 알고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태초에게 오래살려면 몸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웃으면서 "오래살고 싶지 않으니까 마음대로 해라! "하고 응수했다.  충분한 증거를 수집하고 행동으로 옮기려 했으나 문제가 발생했다. 건물에 분명히 구분소유자가 있음에도 1993년에서 2004년까지 단 한번도 관리단 회의가 없었던 것이다. 법으로 집합건물은 관리단이 구성되어 있어야 했으나 건물주의 노련한 운영으로 관리단은 와해되었고, 어느 누구도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바로 잡으려 하지 않았다. 구분소유자로 구성된 관리단이 있어야만 집합건물법에 명시된 법조항에 의거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데, 관리단 자체가 구성이 안되어 있어 합법적인 대응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구분소유자들과 점포 임차인들을 찾아다니면서  관리단 구성을 위한 협조를 설득했다. "왜, 불법적인 건물관리를 하고, 말도 안되는 관리비를 징수하는데 보고만 있는가?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하고 지속적으로 설득하자 몇명이 자원해서 돕겠다고 했다.


이때 집합건물관련 정확한 법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필요했다. 숱한 소송에서 이긴 당사자와 싸우려면 이쪽에서도 법적으로 철저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때 만난이가 조용주 변호사이다.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 찾아간 조용주 변호사 사무실은 소박했다. 조용주 변호사 자신이 겉치레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1971년생으로 젊었다. 오랫동안 만나면서 느끼는 것은 한결같다는 것이었다. 차분하면서 냉정하게 일처리하는  모습은 일품이다.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명품변호사와 함께하는 아름다운세상(http://blog.naver.com/oklawyer)"처럼, 그는 명품이었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해당건물관련 태초가 배포한 내용을 가지고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어왔지만 두번의 형사재판에서 모두 승소했다. 이 형사소송에 이어진 구분소유자 소집명령과 관리단 구성으로 지금 그 건물은 제대로 된 관리단이 형성되어  준깡패같은 관리소장은 물론 모든 직원을 내쫓아 버렸고 주변건물 대비 저렴한 관리비를 내고 있다. 건물관리 직원들은 서비스로 무장했다. 조용주 변호사의 도움으로 10년이상 불편을 겪어온 구분소유자들, 임차인들에게 태초는 영웅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당시 건물관련 태초가 집합건물 관리단 구성에 바친 시간은 근 2년, 그리고 소송으로 바친 시간도 근 2년이었다.



그 후 조용주 변호사와 개인적으로 몇번 만났다. 태초보다 6년이나 어렸지만,정의감, 품격이 남달랐고, "불의와 관련된 소송건이라면 맡지 않는다"는  변호사로서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 인연이 이어져 2013년 8월부터 시작한 모 여행사의 형사소송 2회, 민사소송1회, 그리고 태초가 소송을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총 4건에서 모두 이겼다. 상대방 로펌회사들의 대표변호사가 검사장출신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의 변호능력은 대단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조용주 변호사는 늘 품격을 잃지 않는다. 늘 정의의 편에서, 약자의 편에서 일처리하려고 한다. 불필요한 표현도 삼간다.필요한 말외에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의뢰인의 편에서서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소송도 가급적이면 안하는 것이 좋다' 고 조언하기도 한다. 결과를 보면 원고나 피고나 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송에 들어가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충분히 고려하라'고 충고한다. 이득을 보는 사람은 대부분 변호사라는 것을 말하고 가급적이면 당사자가 만나서 좋게 해결할 것을 조언하기도 한다. 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최후의 방법임을 조언함으로서 변호사로서 품위를 결코 잃지 않는다.


조용주 변호사는 시간만 나면 선행을 한다. 그는 서민들이 사는 주거지역 노인복지관 방문을 찾아다니면서 사랑의 쌀 전달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구글에서 조용주 변호사로 검색하면 그의 선행관련 기사들이 부지기수이다. 그가  변호사로서 품격을 잃지 않으며 승소율이 높은 것은  어떻게 보면 " 약자편에서, 정의의 편에서" 일을 해왔고, 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열심히 일해온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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